700년 전 약속 | |||||
이병언 | 2019-03-22 12:49:00 | 1117 | |||
이진숙 지음 | 북인 | ||||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 한 어부의 그물에 중국 도자기가 올라왔다. 그 도자기는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 중국 저장성 칭위엔을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던 범선에 실렸던 무역품 중 하나로 밝혀졌다. 범선은 풍랑을 만나 증도 앞바다에 침몰했고 바다 속 갯벌에 묻혀 잠자다가 700년 만에 떠올랐다. 증도는 시루 증(甑)을 써서 시루섬이라고도 불렀다. 700년 전 무역선에 탔던 세령의 후손인 쾌영이 눈보라를 뚫고 시루섬에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시때때로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는 시루섬 사람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물건이었다. 바다에 고려장을 지냈던 이 섬의 오래 전 풍습과 한국전쟁의 상처로 인해 그것들은 ‘귀신 붙은 그릇’으로도 통했다. 게다가 해저 유물을 인양하는 십여 년 간 고요하던 섬과 순박하던 섬사람들은 수난을 당해야 했다. 해서 시루섬 사람들에게 중국 도자기는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상처기도 했다. 유독 상처가 깊은 도화는 오랫동안 시루섬을 떠났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7년 전 다시 섬에 들어왔다. 그녀는 쓰러져가던 아버지 집을 허물고 배 모양의 카페를 짓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카페에 민박 손님으로 찾아든 쾌영은 중국 도자기에 대해 자꾸만 캐고 다니고, 신문기자인 딸 채목까지 신안해저유물에 관련한 프로젝트 취재를 맡으면서 그녀의 상처를 건든다. 남편 기석의 죽음과 연루된 박 교수가 딸 채목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도화는 점점 예민해지고 그녀는 깊은 불안의 늪으로 빠져든다. 시루섬 앞바다에서 건진 수만 점의 유물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시가 적힌 접시’였다. 이름 모를 어느 여인이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시(漢詩) 한 편은 마치 700년 전 메시지처럼 그것을 읽는 이들 가슴에 찡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우리가 맞이한 오늘 하루는 수백 년 전의 어느 오늘과 맞닿아 있었다. 그 누군가의 오늘이 나의 오늘을 열어준다고 생각하니 더욱 소중해지는 오늘이다. 또한 언제 어느 때 침몰할지 모를 우리 생(生)이어서 귀하고 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