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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2013-01-26 12:26:00
흑산 홍어의 돌직구
한 점 집어 오독오독 깨무는 찰나. 콧구멍이 뻥 뚫리고 가슴 속이 금세 쏴하다.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진 실태, 요즘 조어로 말하자면 이게 바로 톡 쏘며 달겨드는 ‘돌직구’다. 아이쿠! 이 놈 봐라. 진정하자고 콧잔등이라나 말랑말랑한 걸 도피삼아 날름 집었다. 순간 수상쩍다 했더니 ‘돌직구’ 시속 160킬로, 메이저 최상급. 최루탄 가스를 폭풍흡입한 양 바로 ‘넉 다운’이다.

맨 처음 홍어를 맛 볼 때 누구든 구겨져 똑같은 소리를 한다. 이딴 걸 왜 먹는가요. 나 역시도 그러하였다. 소행이 괘씸해서 따로 청하여 이 발칙한 뭔가를 혼내보자고 작심했는데 여직 난 뒷간 냄새나는 통렬한 ‘돌직구’ 괴력에 빠져 있다. 얼얼한데도 멀쩡하다. 알딸딸하지 않고 얼떨떨할 뿐이다. 흐물흐물한 연골 날개를 휘저으며 수심 80미터 깊이를 누비는 녀석. 수압이 얼마인데 연한 게 강한 것이고 딱딱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난다.

녀석은 지푸라기에 둘둘 말려 항아리에 처박혀 썩은 주제임에도 대기압은 별 게 아니라는 듯 살결은 발갛게 윤기가 흐르고 여전 바다 내음이 물컹 난다. 오늘 모처럼 흑산도출신 비싼 홍어를 맛본다. 기름지고 차진 돼지고기와 성질이 찬 홍어를 신 김치에 곁들여 따듯한 성질의 막걸리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하지 않던가. 이름 하여 ‘홍탁 삼합’.

그쯤 마니아는 홈런을 날렸을 게다. 내리꽂는 ‘돌직구’에 ‘나이스 원 샷’. 던지기도 잘 던졌고 받아치기도 잘 한 셈이다. ‘나이스 원 샷’일 때는 코를 푹 찌르면서 눈물이 찔끔 솟는다. 결국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이 다 통한 신통력의 쾌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흑산도 홍어를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나는 단지 맛으로서만 흑산도 홍어를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알아본 ‘홍어 삼합’도 별미 중 별미라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별미라 여기는 셋은 산란 때를 노려 주둥이를 흑산도에 처박은 참 홍어와 이를 양껏 잡아 보겠다고 바다에 나선 홍어장수 문순득 그리고 흑산도에 귀양 와 뭘 할까 심심해하던 정약전 선생이다. 홍어를 내다 파는 것이 생업이었던 문순득.

그는 홍어 때문 거친 풍랑에 휩쓸려 일본 오키나와(유구국), 필리빈(여송), 마카오(오문)까지 표류하다 3년 2개월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의 생환에 모두 놀라면서도, 그가 접했던 다양한 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을 믿어주지 않았다. 돈 사람 취급도 받던 마당 선수로 치면 벤치 신세인 그를 투수코치격인 흑산도로 유배 온 조선의 실학자 자산 정약전이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발탁한 신인은 바로 이 세상에 돌직구를 던진다. 그로 그는 나라에서 벼슬직함도 새겼다.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은 문순득의 파란만장했던 표류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글을 남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용담을 쏟아내고 받아 적던 두 사람에게 때때로 가장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을 남도의 별미, 홍어. 흑산도 홍어가 있어 모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돌직구’는 아무나 던지는 화두가 아니다. 여유가 있고 능력이 출중해야 무리 없이 소화한다. 시원치 않은 자가 ‘돌직구’를 내리꽂는다면 단박에 소화불량에 걸리고 분위기는 영 망치고 만다. 퇴장감에 반역내지 반항이 될 소지도 많다. 전 세계에 퍼진 가오리이지만 어종의 생리를 꿰뚫어 제 맛 나는 특유의 음식을 개발한 사람들.

남도 동네에 진수성찬에 홍어가 빠지면 인정을 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늦은 배달에도 배도 안 아프고 맛이 특이하여 그러한 것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돌직구’를 선사한 것이다.
그로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마니아가 줄을 선다. 그런데 말이다. 천하가 알아주는 홍어 효능이지만 소화불량 홍어가 이따금 존재한다는 것, 아쉽지만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홍어의 서울 분포도” 라는 제목의 게시판을 우연히 만났다. 뭔가 싶어 들여 보다 말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 특출 난 홍어를 전라도 출신들을 비하하는 앞잡이로 쓰고 있는 노릇은. 이도 ‘돌직구’라 우기겠지만 어디 이 못난 짓을 ‘돌직구’라 할 것이던가. 데드볼이고 급체에 걸려 당장 실려나갈 퇴장감이지.

“야! 이 돼 먹지 못한 인간들아. 내 썩어 문드러져도 변함없이 너희들 위해 살건만 너네는 여직 아옹다옹 편 가르고 쌈질들이냐.”

이쯤 홍어가 한마디 해도 할 말도 없다. 누군 또 이쯤 한마디 할지 모른다. “누구를 홍어 거시기로 아나.” 그러면서 또 당쟁은 지속되고 원성은 들끓겠지. 좁은 한반도에 속도 좁은 이 세상, 아쉽게도 우린 늘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처럼 세상의 아득한 찬바람이 대책 없이 가슴을 후벼드는 날엔 ‘홍탁 삼합’ '돌직구'에 마냥 취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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